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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일상 일기 /영화 한편 , 책 한권

방랑자들 : 올가토카르추크

방랑자들 속에 나오는 다양한 표현들에 반해서 읽었다. 사물을 읽어내는 시선들이 매력있다. 올가토카르추크는 사물과 시간 하나하나에 삶과 죽음을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에 남은 구절 

 

152P

이불 속으로 들어가 TV를 켜고 볼륨을 죽였다. 그래, 얼마든지 툴툴거리고 깜빡거리고 칭얼대 봐라. 나는 무기를 꺼내 들 듯 리모컨을 앞으로 내밀고 화면 정중앙을 겨냥했다. 한 번씩 쏠때마다 채널이 하나씩 죽음을 맞았지만 곧바로 다른 채널이 생성되었다. 내 게임의 목적은 밤을 좇아가는 것이고 밤의 지배를 받는 세상에서 송출된 채널들만을 골라내는 것이다. 

 

246P

어떤 면에서 그건 사실이었다. 사실이란 늘 어떤 단면 안에 깃드는 법이니까. 

 

221P

요제피네 졸리만 폰 포이히터슬레벤

 

273P

"나는 말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고로 누군가가 존재한다?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하라. 은유, 우화, 망설임, 끝맺지못한 문장들, 동사 바로 뒤에 거대한 심연이 도사리고 있기라고 한 듯 중간에 문장이 끊기더라도 개의치 말라. 설명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상황은 절대 만들지 말라 문을 닫아 놓아서도 안된다. 저주의 발길질로 그 문을 걷어차라. 잊어버리고 싶은, 수치스러운 복도로 우리를 내모는 그 문들을 저주하라. 

 

319P

다만 우리는 좋고 나쁨에 대해 끊임없이 판단하려는 원시적인 욕구를 떨쳐버려야 한다. 문명화된 인간이라면 복수심이나 탐용, 소유욕과 같은 원시적인 충동을 잊어야 하듯이 말이다. 신, 그러니까 자연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부적절한 지성은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562P

그들의 시선은 대량으로 찍어 낸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된 것들만 따라다니며 심지어 그럴때도 그저 대상의 표면을 미끄러져 갈 뿐이라고 교수는 말했다. 

 

601P

우리는 문자와 이니셜을 서로 교환하고 종이 위에 서로를 불멸로 남기고 서로를 플라스티네이션 처리하고 문장의 포름알데히드 속에 서로를 담글 것이다. 

 

 

 

읽고...

죽음을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눠서 사유해보는 경험을 했다. 포름알데히드 속에 담겨진 살아있었던 생명의 부유물들을 보며 보여짐 이외의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신체의 끝을 경험했고, 그럼과 동시에 신체를 떠난 영혼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결국 여행심리학자들에 의해 우리가 여기 있음이 중요해지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고 죽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 또한 현재 살아있기에 의미있다는 생각을 역으로 하게 해주었다. 

 

올가토카르 추크는 나는 ~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한 구절을 책 속에 집어넣곤 한다. 태고의 시간들에서는 <커피 그라인더는 간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고 방랑자들에서는 <나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존재의 이유를 단순하지만 의미있게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