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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일상 일기 /영화 한편 , 책 한권

폴란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

절판된 책이라 현재 중고로만 구매할 수 있다. 독서모임에서 폴란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님들의 책을 몇 권 보기로 했다. 올가토카르추크 작가님 다음으로 선택된 스타니스와프 렘이라는 작가님이다. SF소설을 썼다고 해서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대부분 소설에서 첫 번째 장은 이 소설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부분이다. 첫번째 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초반에는 주인공인 로보트인지 단순한 발명가인지부터가 헷갈렸다. 소설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소설의 시간, 장소, 주인공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첫 장부터 스케일이 아주 크다. 

 

- 아래부터 스포 포함.

  초록색 글은 제목이나 소설의 부분을 그대로 따온 것이고

  검정색 글들은 줄거리 요약이나 제 생각입니다.

 

32P 세계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아주 재미있는 설정들이 많다. 소설에는 트룰루라는 천재발명가와 그의 친구 클라포시우스가 나온다. 클라포시우스 또한 똑똑하다. 트룰루가 한 때 N으로 시작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고 클라포시우스에게 테스트해보라고 했다. 클라포시우스는 세번째 시도로 'Noting' 무를 만들라고 했다. 기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N으로 시작하는 것부터 없애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클라포시우스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다가 본인이 좋아하는 곤심, 냥자, 포각이 사라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기계는 단번에 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러면 명령을 수행해낸 내가 능률적이고 유능한 기계라고 누가 누구에게 말해줄 수 있겠냐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도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해줄 수 없다면, 그때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나 자신이 어떻게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냐고 말하는데 기계가 이렇게 말을 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사이버리아드에는 과학자들이 할법한 개그가 정말 많이 나온다. 부식경화라던지 프로그래밍화해서 아이를 낳는 설정이라던지 말이다. 사실 엄청난 용어를 써서 한 개그들이 많이 보이나 개그라는 것만 인지하고 이게 어떤 상황과 설정에서의 개그인지 알길은 없다. 다만 원자를 설명할 때 기본적인 원자의 성질을 이용한 개그를 하는데 그것만 조금 알아들을 수 있다.

 

 

또 철학이나 심리학을 녹여내서 설정을 한 경우도 많다. 트룰루가 변호사를 만들었으나 필요없는 말을 해서 잡아뜯어서 해체한 적이 있는데 그 부품으로 법학자를 만들었다. 그 법학자는 자신의 의견을 듣고 저를 잡아뜯지 않겠다고 약속하셔야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트룰루는 약속하며 내가 너를 잡아 뜯을거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거야?라고 말하자 법학자는 음..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말한다. 

 

211P

트룰루는 자기가 이 기계를 만들면서 냄비 변호사의 부속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추측했다. 분명히 그 사고에 대한 기억의 흔적이 새회로에 흘러들어가서, 무의식적인 콤플렉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분석한 (정확히 말하면 프로이트나 융) 무의식을 기계에 적용해놓은 설정들이 재미있었다.

 

194P 게니우스 왕의 이야기 , 기계 세 대 이야기- 첫번 째 이야기

정당한 보상을 주지않는 왕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리석음과 의심이 어떻게 지혜와 충성을 갉아먹고 스스로를 몰락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279P 게니우스 왕의 이야기 , 기계 세 대 이야기- 두번 째 이야기

아버지는 '우연의 일치' 어머니는 '엔트로피'인 자생자 기계 미모시의 독백

그래 나는 훌륭해 ! '아니야' 같은 말은 있을 수 없어! 하지만 내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남아있어. 아니면 다른 말로 바꾸어서, 나는 누구지? 자, 여기에 대해 대답을 얻어야할까? 흠 ! 만약 나 말고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종의 무엇이건 간에 말이야, 그러면 그와 나란히 서서 나 자신과 비교해볼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절반은 성공일텐데!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자는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 ! 그러므로 오직 나만이 존재하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은 나밖에 없어. 나는 어떤 시이든 내가 좋을 대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잊. 하지만 그러하면 나는...생각하기 위한 빈 공간일 뿐일까?

 

325P페릭스왕자와 크리스탈 공주 

여기서 우리 인간은 '창백얼굴'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크리스탈공주는 명성이 대단한 공주인데 오직 창백얼굴과만 결혼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종의 입장에서 인간을 묘사한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과학적인 묘사가 이루어지니 또 다른 시선으로서의 인간이 보였다. 

 

여기서 크리스탈 공주는 한번도 보지 못한 존재(인간)와 결혼을 꿈꾼다. 크리스탈공주를 너무나 사랑한 페릭스왕자가 현자와 함께 본인을 인간인 것 처럼 꾸미자 크리스탈 공주는 인간에 대해 아는 지식들로 그를 체크해나가고 그는 시험을 통과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곧 실제 인간을 마주하고 생각보다 이상하게 생긴 인간을 보자마자 혐오하나 자신이 해온 말이 있기에 그 말을 철회할 수 없게된다. 그래서 페릭스와 인간은 결투를 하게되고 다행히도 (당연히) 페릭스의 승리로 둘은 결혼하게 된다. 

 

철학이나 소문은 대부분 관념이다. 그걸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의 실체를 제 3자의 눈으로 관찰하니 뭔가 씁쓸하면서도 우스웠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철학이 필요하고 소문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설정이 날카로우면서 우스꽝스러우나 정교한 과학적 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흥미롭고도 즐거운 부분이다. 내가 과학을 조금 더 알았더라면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겠지만 중간중간 체계적이고 황당한 설정들에 헛웃음만 지을 수 있었던게 안타깝다.